김형진의 작업에 대한 또 다른 小考

김형진의 작업에 대한 또 다른 小考

관념과 인습의 칼날로 조각난 신체, 그 안에서 마주한 우리의 초상
김형진 개인전_20090826-20090909_갤러리 이즈

황정인(독립큐레이터)

김형진의 작업에서 인물의 동세가 사회의 고정관념, 타인의 시각에 의해 규제되어 부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은 그의 첫 번째 개인전 서문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이전의 해석이 인물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인체의 각 부분이 조각나 있는 상태로 그려진 상황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석을 늦었지만 짤막하게나마 덧붙여보고자 한다.

김형진의 작업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누렇게 빛바랜 조각들이 서로 얽혀져 있는 구조사이로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의 형상이다. 작품의 기본적인 구성은 중국의 전통놀이인 칠교에서 바탕을 두고 있지만, 칠교를 이루는 기하학적인 조각의 형태가 그림 속에서 인체의 부분을 이루는 기본 형태로 자리한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먼저, 어떤 한 인물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그 사람의 성별, 나이, 직업, 생김과 같은 객관적인 설명 외에도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그와 잠깐이나마 인연을 맺은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첫인상, 혹은 오랜 세월 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그의 성격 내지 그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각으로 자신의 경험에 의한 기억을 바탕으로 하나의 인물을 정의내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서 각각의 기억들이 하나의 인물을 판단하거나 대변하는 전체가 될 수 없듯이, 그의 그림에서 조각난 파편은 타인의 시각에 의해 갈라진 기억, 인상이 되어 인물을 이루는 이미지의 일부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파편화된 신체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유기적인 구조를 이뤄나가야만 하나의 인물이 완성되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스스로를 정의내리는 것(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 외에도 타인의 의해 정의되는 과정(남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이뤄질 때만이 비로소 진정한 정체성 내지는 존재의 의미를 찾아나갈 수 있다는 점과 매우 닮은 구석이 있다. 단, 이것이 김형진의 그림에서 나타날 때에는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고정관념이나 편견, 인습이라는 다소 네거티브한 맥락을 동반하기 때문에, 보다 정제되고 날카롭고 예리한 모서리와 각으로 이뤄진 기하학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그의 작업노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무한경쟁시대에서 타인은 나와 함께 숨을 쉬는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인 동시에 비교와 분류의 대상인 잠재적 경쟁상대로 취급된다. 분류의 기준은 지속적으로 생산되며, 생산된 시각이 일반화되는 과정을 통해 선입견 혹은 고정관념으로 굳어진다. 분할된 기하학적 도형은 무의식적으로 흡수된 관점의 결정체로서 이것들이 맞물려 인물의 형상을 구축한다. 일어설 수도 없는 비좁은 정방형의 틀 안에서 인물들은 생산된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이며, 동시에 비교와 분류의 대상으로서 화면의 중앙에 자리잡는다.”- 김형진의 작업노트 중에서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김형진의 그림에서 관습과 인습에 의해 규정되어 개인이 지닌 정체성을 상실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은 영화 및 매체이론가인 R. L. 러츠키(R. L. Rutsky)가 독일의 영화감독 프리츠 랑(Fritz Lang)의 1926년 영화 를 매체 미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에서도 유사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아래에서 인용한 러츠키의 글은 그의 저서 에서 현대사회의 테크놀로지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사례로 든 영화해석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기계화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정체성을 잃고 로봇이나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노동자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이것을 사회적, 정치적 신체의 소외와 파편화된 사회적 신체와 맞물려 해석한 점이 흥미롭게 다가오기 때문에 간략하게 소개해보고자 한 것이다.

메트로폴리탄 내부에서 노동자는 시스템의 기능적, 테크놀로지적 합리성에 적응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노동자는 조밀하게 정렬된 기하학적 대형에 맞춰 기계처럼 기능해야 하며, 이때 그들의 개별적 정체성은 상실된다. (중략) 기계화가 형상화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정치적 신체의 소외다. (중략) 절단되거나 파편화된 사회적 신체는 비유기적인 것, 테크놀로지적인것, 죽은 것으로 간주된다. 노동자는 인간의 생명을 정의하는 영혼이나 감정을 상실한 채 로봇이나 좀비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 R.L.Rutsky, High Techne: Art and Technology from the Machine Aesthetics to the Posthuman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공장의 노동자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좀더 넓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이것은 외부세계(사회)에 의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규격화 된 삶을 사는 인간이자, 개인의 정체성을 상실하여 결국 타인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은유적으로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인간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 기능하지 못하고 언제라도 타인으로 대체 가능한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되기 때문에, 그에게서 한 사람으로서의 개별성과 주체성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규격화된 사고의 틀이 김형진의 그림에서 인물을 안팎으로 둘러싸고 있는 차가운 직선과 도형들을 낳고, 이렇게 만들어진 조각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하나의 인물을 형성한다. 그래서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한 로봇과도 같은 인물이 그림의 중앙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는 러츠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혼과 감정을 상실해버린’ 소외된 인간이 시각화되어 탄생한 것임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그의 그림에 나타난 ‘조각난 신체’, ‘파편화된 신체’라는 점은 자연스럽게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거울단계(Mirror Stage)’를 한 순간 떠올려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전에 라캉의 거울단계에서 말하는 파편화된 신체의 개념을 살펴보자면, 라캉의 거울단계는 생후 6개월 내지 18개월이 된 어린 아이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인식해 나가는 동일시 경험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거울단계의 이전의 어린 아이는 자신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고 단지 자신이 바라보는 손, 발 등 지극히 제한된 시각 안에서 신체의 부분만을 인식할 뿐이다. 아이는 점차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 전부를 바라보게 됨으로써,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인간의 주체성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조각난 신체라는 개념은 거울 단계 이전에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며, 아이는 거울단계를 지나면 이미지를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면서 파편으로 조각난 신체의 이미지를 극복하여 통일된 전체로서의 신체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인간이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예비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김형진의 그림을 처음 대할 때, 먼저 커다란 정사각형 화면 속에 그려진 조각들을 발견하고 그 사이로 인체와의 유사한 형태를 더듬어 찾아가다보면 인물의 형상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인식하게 되는 매커니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지점과 유사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와 닮은 인물의 초상을 찾아내기 위해 눈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결국엔 그림 속 인물의 모습이 나의 몸, 나의 일상 속 행동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변증법적 동일시의 과정. 비록 라캉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좀 더 광의의 맥락에서 바라볼 때 김형진이 말하는 다음의 글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하게 분할된 조각들 사이에서 인물의 형상을 명확하게 인지해 내듯, 나는 현실에서 그들이 분리된 방식으로 나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분리시켜 본다. 내가 바라는 가장 극적인 경험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가 돌연 그들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본질과, 나의 본질이 실제로 하나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비교하고 분류하던 ‘다른 점’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을 이해하는 것, 다시 말해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 김형진의 작업노트 중에서

– 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