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인간을 가둔 씁쓸한 시대의 초상

소외된 인간을 가둔 씁쓸한 시대의 초상

황정인(전시기획, 前 사비나미술관 큐레이터)

회갈색에서 다갈색에 이르는 수많은 황토빛 이미지 조각들이 마치 퍼즐이나 패치워크처럼 짜 맞춰져 있는 정사각형의 화면. 곧이어 빛바랜 조각들의 윤곽선 사이로 낯익은 인물의 형상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온다. 마치 커다란 그물 속에 갇혀있거나, 불투명한 막에 둘러싸여 있는 인물들은 감정이 메말라 버린 얼굴 표정과 함께 하나같이 불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형진의 그림에서 받은 첫 인상이다.

김형진은 동시대를 사는 도시인을 소재로 사회와 개인의 관계,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대사회의 제도와 인습으로 인한 인간소외의 문제를 다룬다. 그의 작업은 사람이 많이 붐비는 도심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오랜 시간 인물을 관찰하고, 눈에 띄는 인물들을 사진으로 포착하거나 즉석에서 연필로 스케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수집된 인물들을 화면에 옮기기 전에 작가는 인물의 동세가 지닌 최소한의 방향성만 감지할 수 있는 직선을 빠르게 그어나가면서 하나의 정제되고 단순화된 형태의 인물상을 만든다. 그러면 인체의 곡선은 완전히 사라지고, 조각난 사각형과 삼각형의 조합들로만 이뤄진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단순화된 인체 표현 외에도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선들과 도형의 조합들이 유독 눈에 띄는데, 각각의 형태가 지닌 특징을 살펴보면 모두가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규제하고 있는 일종의 틀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직, 수평의 연장선이 만들어낸 곁가지 도형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체를 감싸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그 위치가 대개는 움직임을 유발하는 손목, 팔꿈치, 어깨, 무릎, 발등 주요 신체부위 주변에 분포하여 인물의 동작을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물의 주변에 또 다른 영역이 존재하는 것을 가시화한 것으로, 인물을 둘러싼 고정관념, 편견, 타인의 시선 등 사회제도와 인습의 총체를 의미한다. 즉 현대인을 상징하는 그림 속 인물은 자신의 주관에 의해 자유의지로 움직이는 주체가 아니라,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타인, 사회 등의 타자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타자의 시선과 사회의 고정관념이 인간 주체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김형진의 작업을 처음 대하는 이들은 이처럼 선과 선이 만나 이뤄진 조각난 이미지들이 화면의 중심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모습에서 20세기 초 큐비즘과의 형식적 유사성을 찾아내고자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사실 그의 작업은 입체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림 속 인물은 분할된 조각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하나의 전체적인 이미지로 거듭나는 구조를 취하지만, 이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다각적인 시선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서 바라본 인물을 단순화된 도형들의 조합으로 탄생시킨, 철저하게 평면적인 그림이다.

더욱이 그의 그림은 고대 중국부터 전해 내려오는 퍼즐놀이 중 하나인 칠교놀이(七巧, tangram)에 조형적 근간을 두고 있다. 크고 작은 5개의 직각이등변삼각형과, 정사각형 1개, 평행사변형 1개 등 총 7개 조각으로 구성된 칠교는 각각의 조각을 이용하여 새롭고 독창적인 모형을 고안해내는 게임이다. 정사각형의 틀에서 7개의 작은 조각을 꺼내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형의 가짓수는 10,000개가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하지만 수백, 수천 개의 가짓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모형의 기본이 되는 7개의 조각은 가로 세로 10센티미터의 작은 정사각형 형태의 틀 안에 다시 가둬지게 된다(본래 칠교는 7개의 조각이 기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여기에 조각 수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변형 퍼즐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 역시 이러한 기본 틀 안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이를 김형진의 작업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작가의 시선에 포착되는 수천 명의 현대인들도 각각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결국 관념의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속박된 존재인 것이다. 캔버스의 형태가 정사각형 모양이면서,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사각형의 네 모서리 안에 가득 채워지게 표현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그가 그리는 인물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한번쯤 봤음직한 익숙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누군가를 정처 없이 기다리는 모습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의 행동양식을 단순화하고 보편화하면서 동시대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또한 인물들 간에는 유독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들이 있다. 바로 작품 속 인물들의 시선이 모두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고, 인물의 몸 또한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먼저 한쪽 방향으로 시선을 처리한 것은 개성 없이 천편일률적인 사고로 일관하고 있는 현대인을 풍자한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사진과 드로잉으로 담은 인물을 최종적으로 화폭에 옮길 때에도 항상 의도적으로 시선이 한 방향을 향하도록 통일되게 처리한다. 다음으로 몸의 표현이다. 그가 그린 인물의 신체는 마치 고대 이집트 미술가들이 무덤벽화의 인물들을 그릴 때 신체 각 부분의 특징을 가장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옆얼굴과 발과 다리의 측면을 고집했던 것과 유사하다. 당시의 화가들은 인물을 표현함에 있어서 하나의 형식적 규칙에 따라 인물을 그렸는데, 인물들은 일정한 형식에 의해 모두 뻣뻣한 자세로 표현되었다. 실제로 이집트 미술가들은 인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당시의 내세관에 입각하여 완벽함과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는데, 이를 위해 그들은 인체표현에 있어서의 기하학적 규칙성을 강조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물의 본질적인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점을 미루어 볼 때, 김형진의 회화는 기하학적 인체표현으로 동시대의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인물상을 그려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간에 또 다른 해석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실 작가가 이렇게 인물(현대인)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게 된 것은 대학시절 시카고의 황량한 도시 이미지를 그린 시리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의 문명이 일궈낸 거대한 도심 한복판에서 작가가 마주한 것은 주인 없는 집처럼 인기척 없이 바람만 휑하게 부는 텅 빈 거리다. 문명에 의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벌어지면서 인간은 존재론적 의미를 상실하고 자연스럽게 익명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도시문명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은 이후 자연스럽게 작가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거리를 스쳐지나가는 익명의 사람들을 주제로 한 로 이어진다. 그는 아파트, 거리 등 일상 속 도시 공간에서 만나는 인물의 단상을 하나의 명확한 윤곽선이 있는 고정된 이미지로 표현하지 않고 흐릿한 인물의 그림자 형태로 표현해 나간다. 특정인이 아닌 익명의 인물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표현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작가의 망막을 빠르게 스쳐지나간 인물의 몸짓은 붓으로 거칠게 표현되면서 주위에 많은 잔상들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 밖 관찰자(작가)의 시선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주인공과 작가 간의 보이지 않은 거리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심리적인 거리감은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변화하는데, 마치 사각형으로 된 관념의 렌즈로 도시인의 모습을 관찰하듯 인물의 신체를 정사각형의 틀 안에 가두고, 신체의 움직임을 조각난 도형이미지로 재차 제한하는 양상으로 발전한다. 인물은 그 안에서 더욱 고립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소외의 의미를 한층 강화시켜 나간다. 결과적으로 보면, 문명의 상징인 도시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여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긴 것이 오늘날의 작품으로 이어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그의 회화가 지닌 또 다른 특징은 그가 사용하는 재료에 있다. 사실 현대의 회화적 표현에 있어서 재료에 대한 언급이 충분한 설득력을 얻기가 어렵지만, 적어도 김형진의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 작가는 먼저 캔버스에 한지를 접착한 화면에 스케치에서 옮긴 인물의 생김새를 목탄으로 그리고, 면을 채색해나간다. 이때 채색의 주재료로 쓰이는 것은 다름 아닌 인스턴트커피이다. 커피의 농도에 따라 색을 다양하게 조절하여 원하는 채도의 색을 얻는데, 이미지의 윤곽선을 그릴 때 사용하는 목탄을 직접 가루형태로 갈아서 먹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부드럽고 다채로운 명암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학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것이 모노톤의 농담 표현을 더욱 자유롭게 해준다. 작가가 유독 커피를 작품의 주요 채색 재료로 사용하는 이유는 작품 속 인물들은 동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라는 점과 맞닿아 있다.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호식품이자 습관화된 일상의 상징이 되어버린 커피, 특히 인스턴트커피가 자연스럽게 작품의 재료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커피로 채색된 면은 처음에는 고르게 채색되었지만 작가의 붓 터치와 커피자체가 지닌 입자의 성질로 인해 빛바랜 고문서와 같이 누렇고 낡은 느낌으로 완성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물의 배경이 되는 면은 화려한 원색에 기반을 두되, 채도가 낮아서 갈색의 모노톤 인물의 느낌과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작가는 각 인물의 동세가 주는 분위기에 의해 색을 선택하지만 이러한 단색의 색면표현은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가득한 도시 풍경을 상징하는 동시에, 무미건조한 색으로 일관되게 표현된 인물에 시선을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조형요소가 된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채색된 화면 위에 보조제를 이용하여 겉 표면을 불투명하게 코팅하여 화면 전체의 톤을 부드럽게 정리하고 작품 전체에 통일된 느낌을 부여한다. 마치 밀랍으로 코팅된 것 같은 표현은 작품 속 인물이 영원한 시간 속에 박제되어 있는 듯한 느낌마저 전달한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을 잊어버린 채, 외부의 시선과 사회통념에 의해 개인의 생각과 목소리를 낮추고, 통일된 행동을 강요받는 현대인의 모습은 김형진의 작품에서 외부의 제약에 의해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꼼짝할 수 없이 갇혀버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작품이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는 그림 속 주인공의 모습이 곧 인간의 본질로부터 소외되어 가는 현대 도시민의 삶이자, 작가 본인의 모습이며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다수가 이끄는 시류에 편승하여 개별적인 주체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삶은 자율적으로 사고하는 인간 존재 본연의 모습을 앗아간 지 오래다. 이것이 한 시대의 풍속처럼 굳어져 다음 세대가 바라볼 과거의 슬픈 초상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김형진의 그림은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 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