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된 현대인의 실존

파편화된 현대인의 실존

심소미

김형진의 회화는 선과 면이 화면을 분할하며 인물의 형상을 생성해내는 특징을 가진다. 다양한 형상의 도형들이 서로 군집된 인물은, 주로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개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하철에 앉아 신문을 보거나, 카페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고, 무심코 화장을 고치는 모습 등 인물들을 둘러보다보면 공통적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홀로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으나 인물이 주는 정감은 고독하고 적막하다. 더욱이 이들의 시선은 화면 너머 혹은 화면 속 어딘가로 향하며, 개인에게 내제된 고립된 심상을 더한다.

누구도 시선을 마주칠 수 없이 프레임 속 나만의 공간에 놓인 인물의 모습은 군중 속에서 개별화된 현대인의 인상과도 닮아있다. 점점 더 스펙터클해지는 현대 사회 속에서 개인은 거대화된 공간 속에 있으면서도 각기 단절과 소외를 경험하며, 이를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군중 속 타자들 사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개인의 소외감은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 내성화된 보편적 소외의 순간들이다.

작가의 작업에서 개인의 존재, 세계 내 존재로서의 실존감은 스토리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회화의 조형적 측면을 통해 전개되어 나간다. 무수한 조각들이 인물의 형상을 이루며 화면을 분할해나가는 조형적 특징은 그의 작업에서 특히나 두드러지는 면이다. 기하학적인 구성으로 인체를 분절하여 다루는 방식은 미술사적 맥락에서 익숙한 어떠한 스타일 혹은 경향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소재로 취하는 일상의 사람들처럼 현실의 삶, 즉 실존적 상황을 바탕으로 해 본다면 형식적인 특징이 은유하며 심화시키고 있는 작가만의 방향을 짚어볼 수 있다.

형식이 은유하는 바를 살펴보기 전에, 이에 기반 하는 요소로서 앞서 살펴본 작업의 소재와 더불어 재료를 살펴보겠다. 브라운 톤의 색감은 조각난 도형 각각을 개별적으로 드러내면서 통일감 있게 화면을 아우른다. 종이의 질감을 머금듯 스며든 본 재료는, 독특하게도 인스턴트커피이다. 목탄과 커피의 농담을 조절하여 얻어진 색감은 은은하고 섬세한 인상부터 거칠고 깊은 인상까지 다양하게 구사된다. 색감이 주는 감성적 묘미와 더불어 흥미로운 점은, 인스턴트커피가 내포하는 현대적 정감이다.

바쁜 일상의 현대인에게 인스턴트커피는 나라는 존재를 각성시킴과 동시에 내면의 여유를 선사하는 모순적 속성을 지닌다. 개인의 불안하고도 강박적 심리를 자극하면서도 다른 한편 이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의 화면에서 인스턴트커피가 주는 색감은 인물이 내포한 심리에 접근하게 하며, 화면을 향한 시선을 내면의 풍경으로 이끈다.

현대인이 겪는 심리적 정황은 작가가 취하는 소재, 재료와 더불어 조형적 어법을 통하여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하학적 도형을 근간으로 하여 인물의 형상을 분할하는 방식은 첫 개인전 ‘Illogical Tangram'(2009)에서 본격화된 것으로,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해오던 ‘칠교놀이(tangram)’의 구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7개의 조각이 한 세트인 본 놀이는, 본 조각만을 사용해서 현재 1600여개의 도안을 구성할 수 있는 다양성을 지니며, 그 이상의 새로운 도안도 가능하다.

작가는 칠교놀이가 가지는 형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규약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형태로 변주가 가능한 속성에 주목하여, 현대인에게 주어진 여러 경계들을 형식화하고 이를 재구성할 계기를 자신의 화폭에 마련하게 된다. 이러한 형식적 측면은 한 개인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자기 각성에 대한 반영물이라 할 수 있다. 개인에게 갑옷처럼 입혀진 고정관념과 규제들은 그의 화폭에서 여러 조각들로 분화되어 형상을 규제하는 동시에 분열시키는 요소가 된 것이다.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선과 면으로 구분된 수많은 프레임과 모서리는 이 세계의 편견이나 고정관념들, 그리고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타자화된 시선 및 규제범위와 관계된다. 이러한 구속력으로부터 고정된 형태를 해체하여 무수한 도형들이 조합되듯 탄생한 인물은 현대인의 불안정한 심리를 반영하며, 내면에 감추어진 실존적 고뇌를 드러낸다.

기존 맥락의 연장선에 있는 두 번째 개인전 ‘Invisible Anxiety’는 첫 개인전에서 시도된 조형적 어법으로부터 실존의 본질에 중점을 두어 이를 심화시키고 있다. 작가는 본 전시의 주제목인 ‘보이지 않는 불안’과 더불어 ‘역설적 기대감’을 부재로 달고 있는데, 이는 한계 상황 속의 인간이라는 실존적 상황을 보다 심층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다.

작가는 개인의 실존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갈구하는 이중적 상태를 ‘역설적 기대감’이라 부가적으로 설명하며, 이러한 인간의 모순된 상황을 일종의 ‘공포’라 칭하고 있다.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에 복종하면서도 기대를 품고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에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공포심이 존재한다.

실존에 대한 모순적 상황은 근작의 형식적 변화에서도 감지된다. 선과 선이 면을 생성하며 인물을 분할하던 전작에 비해, 근작은 명확한 형태로 구분된 도형들이 인물을 수많은 조각들로 분할시키고 있다. 파편들의 거대한 덩어리로 재구축된 인물은 마치 퍼즐처럼 흩어져나가 언제라도 해체가 가능한 모습이다. 분열과 생성 사이에서 형성된 인물의 심상은 불안함과 기대감을 동시에 함의하며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본 전시에서는 이러한 실존적 상황에 대한 배경으로 작용하는 타자 및 사회적 관계에 대한 내러티브도 시도되고 있다. 전시 작품 중 유일하게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Giant Deal’은 이러한 변화점을 시사해 준다. 두 명의 비즈니스맨이 대척하고 있는 구도의 본 작품은, 서로 거래를 위해 악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리전을 긴장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두 인물이 악수하는 결정적 순간을 파편화하여 서로를 관계시키는 것으로, 타자와의 관계망 속에서 생성되는 공존과 대립 그 모순된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두 인물로부터 구축된 파편들은 관계 사이에 작용하는 구속력과 같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시각화하고 있다. 화면에 건축적 모서리를 둠으로써 드러나는 심리적 공간은, 본 전시의 연극적인 연출 방식을 통해 극화(Dramatization)된다.

캔버스의 프레임에 맞춰 정확한 규격으로 작품을 비추고 있는 조명은, 화면 속 인물을 실제의 공간으로부터 고립시키며 개인이 처한 실존적 괴리감을 극적으로 연출해낸다. 규약된 인공의 빛을 통해 과도하게 조명된 인물은 어둠 속 침묵을 깨고 갈구하듯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이다. 어둠이 감싼 철저한 고독과 불안하게 요동치는 파편들 그리고 발광하며 드러난 인물은 실존에 대한 극단의 공포를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 혹자는 부조리극과 같이 인간성의 허무에서 오는 공포를 직면하고, 이로부터 화면 속 조각난 인물들처럼 반향 할 것이다.

–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