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인(전시기획, 前 사비나미술관 큐레이터)

회갈색에서 다갈색에 이르는 수많은 황토빛 이미지 조각들이 마치 퍼즐이나 패치워크처럼 짜 맞춰져 있는 정사각형의 화면. 곧이어 빛바랜 조각들의 윤곽선 사이로 낯익은 인물의 형상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온다. 마치 커다란 그물 속에 갇혀있거나, 불투명한 막에 둘러싸여 있는 인물들은 감정이 메말라 버린 얼굴 표정과 함께 하나같이 불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형진의 그림에서 받은 첫 인상이다.

김형진은 동시대를 사는 도시인을 소재로 사회와 개인의 관계,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대사회의 제도와 인습으로 인한 인간소외의 문제를 다룬다. 그의 작업은 사람이 많이 붐비는 도심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오랜 시간 인물을 관찰하고, 눈에 띄는 인물들을 사진으로 포착하거나 즉석에서 연필로 스케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수집된 인물들을 화면에 옮기기 전에 작가는 인물의 동세가 지닌 최소한의 방향성만 감지할 수 있는 직선을 빠르게 그어나가면서 하나의 정제되고 단순화된 형태의 인물상을 만든다. 그러면 인체의 곡선은 완전히 사라지고, 조각난 사각형과 삼각형의 조합들로만 이뤄진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단순화된 인체 표현 외에도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선들과 도형의 조합들이 유독 눈에 띄는데, 각각의 형태가 지닌 특징을 살펴보면 모두가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규제하고 있는 일종의 틀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직, 수평의 연장선이 만들어낸 곁가지 도형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체를 감싸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그 위치가 대개는 움직임을 유발하는 손목, 팔꿈치, 어깨, 무릎, 발등 주요 신체부위 주변에 분포하여 인물의 동작을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물의 주변에 또 다른 영역이 존재하는 것을 가시화한 것으로, 인물을 둘러싼 고정관념, 편견, 타인의 시선 등 사회제도와 인습의 총체를 의미한다. 즉 현대인을 상징하는 그림 속 인물은 자신의 주관에 의해 자유의지로 움직이는 주체가 아니라,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타인, 사회 등의 타자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타자의 시선과 사회의 고정관념이 인간 주체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김형진의 작업을 처음 대하는 이들은 이처럼 선과 선이 만나 이뤄진 조각난 이미지들이 화면의 중심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모습에서 20세기 초 큐비즘과의 형식적 유사성을 찾아내고자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사실 그의 작업은 입체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림 속 인물은 분할된 조각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하나의 전체적인 이미지로 거듭나는 구조를 취하지만, 이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다각적인 시선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서 바라본 인물을 단순화된 도형들의 조합으로 탄생시킨, 철저하게 평면적인 그림이다.

더욱이 그의 그림은 고대 중국부터 전해 내려오는 퍼즐놀이 중 하나인 칠교놀이(七巧, tangram)에 조형적 근간을 두고 있다. 크고 작은 5개의 직각이등변삼각형과, 정사각형 1개, 평행사변형 1개 등 총 7개 조각으로 구성된 칠교는 각각의 조각을 이용하여 새롭고 독창적인 모형을 고안해내는 게임이다. 정사각형의 틀에서 7개의 작은 조각을 꺼내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형의 가짓수는 10,000개가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하지만 수백, 수천 개의 가짓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모형의 기본이 되는 7개의 조각은 가로 세로 10센티미터의 작은 정사각형 형태의 틀 안에 다시 가둬지게 된다(본래 칠교는 7개의 조각이 기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여기에 조각 수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변형 퍼즐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 역시 이러한 기본 틀 안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이를 김형진의 작업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작가의 시선에 포착되는 수천 명의 현대인들도 각각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결국 관념의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속박된 존재인 것이다. 캔버스의 형태가 정사각형 모양이면서,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사각형의 네 모서리 안에 가득 채워지게 표현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그가 그리는 인물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한번쯤 봤음직한 익숙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누군가를 정처 없이 기다리는 모습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의 행동양식을 단순화하고 보편화하면서 동시대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또한 인물들 간에는 유독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들이 있다. 바로 작품 속 인물들의 시선이 모두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고, 인물의 몸 또한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먼저 한쪽 방향으로 시선을 처리한 것은 개성 없이 천편일률적인 사고로 일관하고 있는 현대인을 풍자한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사진과 드로잉으로 담은 인물을 최종적으로 화폭에 옮길 때에도 항상 의도적으로 시선이 한 방향을 향하도록 통일되게 처리한다. 다음으로 몸의 표현이다. 그가 그린 인물의 신체는 마치 고대 이집트 미술가들이 무덤벽화의 인물들을 그릴 때 신체 각 부분의 특징을 가장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옆얼굴과 발과 다리의 측면을 고집했던 것과 유사하다. 당시의 화가들은 인물을 표현함에 있어서 하나의 형식적 규칙에 따라 인물을 그렸는데, 인물들은 일정한 형식에 의해 모두 뻣뻣한 자세로 표현되었다. 실제로 이집트 미술가들은 인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당시의 내세관에 입각하여 완벽함과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는데, 이를 위해 그들은 인체표현에 있어서의 기하학적 규칙성을 강조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물의 본질적인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점을 미루어 볼 때, 김형진의 회화는 기하학적 인체표현으로 동시대의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인물상을 그려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간에 또 다른 해석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실 작가가 이렇게 인물(현대인)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게 된 것은 대학시절 시카고의 황량한 도시 이미지를 그린 시리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의 문명이 일궈낸 거대한 도심 한복판에서 작가가 마주한 것은 주인 없는 집처럼 인기척 없이 바람만 휑하게 부는 텅 빈 거리다. 문명에 의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벌어지면서 인간은 존재론적 의미를 상실하고 자연스럽게 익명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도시문명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은 이후 자연스럽게 작가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거리를 스쳐지나가는 익명의 사람들을 주제로 한 로 이어진다. 그는 아파트, 거리 등 일상 속 도시 공간에서 만나는 인물의 단상을 하나의 명확한 윤곽선이 있는 고정된 이미지로 표현하지 않고 흐릿한 인물의 그림자 형태로 표현해 나간다. 특정인이 아닌 익명의 인물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표현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작가의 망막을 빠르게 스쳐지나간 인물의 몸짓은 붓으로 거칠게 표현되면서 주위에 많은 잔상들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 밖 관찰자(작가)의 시선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주인공과 작가 간의 보이지 않은 거리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심리적인 거리감은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변화하는데, 마치 사각형으로 된 관념의 렌즈로 도시인의 모습을 관찰하듯 인물의 신체를 정사각형의 틀 안에 가두고, 신체의 움직임을 조각난 도형이미지로 재차 제한하는 양상으로 발전한다. 인물은 그 안에서 더욱 고립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소외의 의미를 한층 강화시켜 나간다. 결과적으로 보면, 문명의 상징인 도시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여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긴 것이 오늘날의 작품으로 이어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그의 회화가 지닌 또 다른 특징은 그가 사용하는 재료에 있다. 사실 현대의 회화적 표현에 있어서 재료에 대한 언급이 충분한 설득력을 얻기가 어렵지만, 적어도 김형진의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 작가는 먼저 캔버스에 한지를 접착한 화면에 스케치에서 옮긴 인물의 생김새를 목탄으로 그리고, 면을 채색해나간다. 이때 채색의 주재료로 쓰이는 것은 다름 아닌 인스턴트커피이다. 커피의 농도에 따라 색을 다양하게 조절하여 원하는 채도의 색을 얻는데, 이미지의 윤곽선을 그릴 때 사용하는 목탄을 직접 가루형태로 갈아서 먹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부드럽고 다채로운 명암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학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것이 모노톤의 농담 표현을 더욱 자유롭게 해준다. 작가가 유독 커피를 작품의 주요 채색 재료로 사용하는 이유는 작품 속 인물들은 동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라는 점과 맞닿아 있다.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호식품이자 습관화된 일상의 상징이 되어버린 커피, 특히 인스턴트커피가 자연스럽게 작품의 재료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커피로 채색된 면은 처음에는 고르게 채색되었지만 작가의 붓 터치와 커피자체가 지닌 입자의 성질로 인해 빛바랜 고문서와 같이 누렇고 낡은 느낌으로 완성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물의 배경이 되는 면은 화려한 원색에 기반을 두되, 채도가 낮아서 갈색의 모노톤 인물의 느낌과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작가는 각 인물의 동세가 주는 분위기에 의해 색을 선택하지만 이러한 단색의 색면표현은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가득한 도시 풍경을 상징하는 동시에, 무미건조한 색으로 일관되게 표현된 인물에 시선을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조형요소가 된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채색된 화면 위에 보조제를 이용하여 겉 표면을 불투명하게 코팅하여 화면 전체의 톤을 부드럽게 정리하고 작품 전체에 통일된 느낌을 부여한다. 마치 밀랍으로 코팅된 것 같은 표현은 작품 속 인물이 영원한 시간 속에 박제되어 있는 듯한 느낌마저 전달한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을 잊어버린 채, 외부의 시선과 사회통념에 의해 개인의 생각과 목소리를 낮추고, 통일된 행동을 강요받는 현대인의 모습은 김형진의 작품에서 외부의 제약에 의해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꼼짝할 수 없이 갇혀버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작품이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는 그림 속 주인공의 모습이 곧 인간의 본질로부터 소외되어 가는 현대 도시민의 삶이자, 작가 본인의 모습이며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다수가 이끄는 시류에 편승하여 개별적인 주체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삶은 자율적으로 사고하는 인간 존재 본연의 모습을 앗아간 지 오래다. 이것이 한 시대의 풍속처럼 굳어져 다음 세대가 바라볼 과거의 슬픈 초상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김형진의 그림은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 2009 –

관념과 인습의 칼날로 조각난 신체, 그 안에서 마주한 우리의 초상
김형진 개인전_20090826-20090909_갤러리 이즈

황정인(독립큐레이터)

김형진의 작업에서 인물의 동세가 사회의 고정관념, 타인의 시각에 의해 규제되어 부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은 그의 첫 번째 개인전 서문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이전의 해석이 인물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인체의 각 부분이 조각나 있는 상태로 그려진 상황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석을 늦었지만 짤막하게나마 덧붙여보고자 한다.

김형진의 작업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누렇게 빛바랜 조각들이 서로 얽혀져 있는 구조사이로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의 형상이다. 작품의 기본적인 구성은 중국의 전통놀이인 칠교에서 바탕을 두고 있지만, 칠교를 이루는 기하학적인 조각의 형태가 그림 속에서 인체의 부분을 이루는 기본 형태로 자리한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먼저, 어떤 한 인물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그 사람의 성별, 나이, 직업, 생김과 같은 객관적인 설명 외에도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그와 잠깐이나마 인연을 맺은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첫인상, 혹은 오랜 세월 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그의 성격 내지 그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각으로 자신의 경험에 의한 기억을 바탕으로 하나의 인물을 정의내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서 각각의 기억들이 하나의 인물을 판단하거나 대변하는 전체가 될 수 없듯이, 그의 그림에서 조각난 파편은 타인의 시각에 의해 갈라진 기억, 인상이 되어 인물을 이루는 이미지의 일부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파편화된 신체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유기적인 구조를 이뤄나가야만 하나의 인물이 완성되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스스로를 정의내리는 것(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 외에도 타인의 의해 정의되는 과정(남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이뤄질 때만이 비로소 진정한 정체성 내지는 존재의 의미를 찾아나갈 수 있다는 점과 매우 닮은 구석이 있다. 단, 이것이 김형진의 그림에서 나타날 때에는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고정관념이나 편견, 인습이라는 다소 네거티브한 맥락을 동반하기 때문에, 보다 정제되고 날카롭고 예리한 모서리와 각으로 이뤄진 기하학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그의 작업노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무한경쟁시대에서 타인은 나와 함께 숨을 쉬는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인 동시에 비교와 분류의 대상인 잠재적 경쟁상대로 취급된다. 분류의 기준은 지속적으로 생산되며, 생산된 시각이 일반화되는 과정을 통해 선입견 혹은 고정관념으로 굳어진다. 분할된 기하학적 도형은 무의식적으로 흡수된 관점의 결정체로서 이것들이 맞물려 인물의 형상을 구축한다. 일어설 수도 없는 비좁은 정방형의 틀 안에서 인물들은 생산된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이며, 동시에 비교와 분류의 대상으로서 화면의 중앙에 자리잡는다.”- 김형진의 작업노트 중에서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김형진의 그림에서 관습과 인습에 의해 규정되어 개인이 지닌 정체성을 상실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은 영화 및 매체이론가인 R. L. 러츠키(R. L. Rutsky)가 독일의 영화감독 프리츠 랑(Fritz Lang)의 1926년 영화 를 매체 미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에서도 유사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아래에서 인용한 러츠키의 글은 그의 저서 에서 현대사회의 테크놀로지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사례로 든 영화해석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기계화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정체성을 잃고 로봇이나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노동자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이것을 사회적, 정치적 신체의 소외와 파편화된 사회적 신체와 맞물려 해석한 점이 흥미롭게 다가오기 때문에 간략하게 소개해보고자 한 것이다.

메트로폴리탄 내부에서 노동자는 시스템의 기능적, 테크놀로지적 합리성에 적응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노동자는 조밀하게 정렬된 기하학적 대형에 맞춰 기계처럼 기능해야 하며, 이때 그들의 개별적 정체성은 상실된다. (중략) 기계화가 형상화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정치적 신체의 소외다. (중략) 절단되거나 파편화된 사회적 신체는 비유기적인 것, 테크놀로지적인것, 죽은 것으로 간주된다. 노동자는 인간의 생명을 정의하는 영혼이나 감정을 상실한 채 로봇이나 좀비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 R.L.Rutsky, High Techne: Art and Technology from the Machine Aesthetics to the Posthuman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공장의 노동자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좀더 넓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이것은 외부세계(사회)에 의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규격화 된 삶을 사는 인간이자, 개인의 정체성을 상실하여 결국 타인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은유적으로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인간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 기능하지 못하고 언제라도 타인으로 대체 가능한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되기 때문에, 그에게서 한 사람으로서의 개별성과 주체성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규격화된 사고의 틀이 김형진의 그림에서 인물을 안팎으로 둘러싸고 있는 차가운 직선과 도형들을 낳고, 이렇게 만들어진 조각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하나의 인물을 형성한다. 그래서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한 로봇과도 같은 인물이 그림의 중앙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는 러츠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혼과 감정을 상실해버린’ 소외된 인간이 시각화되어 탄생한 것임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그의 그림에 나타난 ‘조각난 신체’, ‘파편화된 신체’라는 점은 자연스럽게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거울단계(Mirror Stage)’를 한 순간 떠올려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전에 라캉의 거울단계에서 말하는 파편화된 신체의 개념을 살펴보자면, 라캉의 거울단계는 생후 6개월 내지 18개월이 된 어린 아이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인식해 나가는 동일시 경험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거울단계의 이전의 어린 아이는 자신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고 단지 자신이 바라보는 손, 발 등 지극히 제한된 시각 안에서 신체의 부분만을 인식할 뿐이다. 아이는 점차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 전부를 바라보게 됨으로써,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인간의 주체성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조각난 신체라는 개념은 거울 단계 이전에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며, 아이는 거울단계를 지나면 이미지를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면서 파편으로 조각난 신체의 이미지를 극복하여 통일된 전체로서의 신체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인간이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예비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김형진의 그림을 처음 대할 때, 먼저 커다란 정사각형 화면 속에 그려진 조각들을 발견하고 그 사이로 인체와의 유사한 형태를 더듬어 찾아가다보면 인물의 형상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인식하게 되는 매커니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지점과 유사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와 닮은 인물의 초상을 찾아내기 위해 눈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결국엔 그림 속 인물의 모습이 나의 몸, 나의 일상 속 행동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변증법적 동일시의 과정. 비록 라캉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좀 더 광의의 맥락에서 바라볼 때 김형진이 말하는 다음의 글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하게 분할된 조각들 사이에서 인물의 형상을 명확하게 인지해 내듯, 나는 현실에서 그들이 분리된 방식으로 나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분리시켜 본다. 내가 바라는 가장 극적인 경험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가 돌연 그들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본질과, 나의 본질이 실제로 하나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비교하고 분류하던 ‘다른 점’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을 이해하는 것, 다시 말해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 김형진의 작업노트 중에서

– 2009 –

정효임(서울 시립 미술관 큐레이터)

김형진은 날 선 잣대로 타인을 재단하는 사회 분위기와 구성원들 스스로의 자기소외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의 작업에서 인간들은 정방형 틀 안에 홀로 앉아 운전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타이핑을 하는 등 반복되는 현대인의 일상에 몰입하고 있다. 텅 빈 공간 속에서 인물들은 패턴화되고 상황과 개체의 특질은 지워진 채, 행위 자체가 결국 행위의 주체를 집어 삼키는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일상의 흔적

화면은 세심하고 감성적인 단계를 거쳐 구현된다. 바탕은 아크릴 물감으로 칠해지고, 중심 이미지는 캔버스에 접착된 순지 위에 커피분말과 곱게 갈아진 목탄 가루를 통해 그려진다. 몇 겹으로 칠했느냐에 따라 음영이 조절되고 겹이 더해질수록 종이는 안료를 머금으며 안정적으로 접착된다. 안료가 물과 섞여 발라지면 종이를 캔버스에 붙일 때 사용한 접착제 알갱이들이 부드럽게 점 점의 입자로 번진다. 종이 위에 올려진 안료의 막이 만들어낸 반투명의 성질은 견고한 존재감과 서정적 미감을 드러낸다. 한지의 사용과 농담을 조절해가는 발색 과정은 김형진의 동양화 교육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동양적’인 접근 방법이기보다는 익숙히 사용해온 한지와 흔한 소모품인 커피를 조합한 일상의 반영에 가깝다. 이질적인 요소들의 조합은 고유한 효과를 만들어내며 설득력을 갖는다.

압축되는 입체

기하학적 구조화와 제한된 색채사용 등은 김형진 작업에서 꾸준히 반복되어온 특징인 동시에 일면 입체주의와의 연결점을 짚어 보게끔 하는 시각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표면의 유사함과는 상이하게 그의 작업은 내용적으로 입체주의와는 상이하게 전개된다. 입체주의 사조가 3차원을 2차원에 옮기는 방편으로 기하학 형상을 사용했다면, 김형진은 오히려 실재를 압축시켜 평면으로 환원시키는 방편으로 기하학 형상을 이용한다. 형상의 근본을 이루는 단위체를 조합하여 대상의 실재성을 평면 위에 구현하려 했던 입체주의와 평면성에 집중하는 김형진은 서로 반대선상에 놓여있는 것이다. 작가는 도형 단위체를 조합해 평면에 입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활용 안에서 형상을 해체하고 입체를 평면으로 환원시킨다. 그 결과, 퍼즐을 이어 만든 듯한 독특한 평면성이 획득된다. 분할된 면들은 2차원에 개념적인 볼륨을 부여하는 요소가 아닌 압축된 현실의 조각이 된다.

찰나의 시공간

표피화된 이미지는 재현의 일루전이 제거된 바탕 위에 조합된다. 인물과 배경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데 붓의 움직임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불투명 아크릴로 칠해진 단색바탕과 그 위에 마치 따로 오려져 붙여진 듯 유리되어있는 인간은 상호 대치되며 긴장감을 유발한다. 화면에서는 정지된 시공간에 유예되어있으나 사이버 공간 속 픽셀 무리처럼 언제 다시 흩어져 버릴지 모르는 집합체의 불안정함이 부각된다. 그려진 인물이 압축된 입체의 흔적이라면 바탕은 무의 공간이자 포착된 시간의 한 면이다. 타자의 시선 속에서 위태로운 자리잡기를 하고 있는 현대인은 조각 군집으로 환원되어 찰나에 머문다.

아침에 눈을 떠 다시 자리에 들기까지 대도시의 인간들은 매일 수백, 수천 명의 타인을 지나친다. 점점 가속되는 삶의 템포에 맞추어 인생의 표면을 부유하는 개인들은 무심히 서로를 스친다. 익명의 개체들에 대한 무관심, 나아가 무관심에 대한 익숙함은 대도시의 정서를 묘사하는 대표적 클리셰이다. 김형진은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현실을 분해하고 재조합하며 일상에 묻혀있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들추어내 보여준다.

– 2009 –

Hwang Jungin
(Independent curator, former curator of Sabina Museum of Contemporary Art)

Square framed pictures display earthy, yellow, fragmentary images that contain numerous earthy yellow variations from grayish to dark brown in the shape of puzzles or patchworks. Through the outlines of such faded fragments, familiar human figures meet the viewers’ eyes one by one. The figures seem like that they are caught in a big fish net or surrounded by an opaque film, and, absent of expression each figure strikes very uncomfortable poses. This is my first impression on Kim Hyungjin’s work.

Kim Hyungjin takes contemporary city people as his subject matter and deals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ociety and individual, more specifically the problem of isolated people that is caused by conventions and institutions of modern society. His work begins with his observation of people in a busy downtown. There he observes and sketches or takes photos of unique characters. Before they are depicted in the canvas, these characters are represented as simplified figures with speedy lines that only suggest very least sense of movement. After that, the curved lines of human body are completely erased and only the figures made by a composition of fragmented squares and triangular shapes remain.

However, other than such simplified representation of the human bodies, one will notice the composition of lines and geometric shapes. When looking at these characteristics of each figure, we can see that these shapes are working as a sort of frame that restricts the actions of characters. The whole body of the figure is fully covered by geometric shapes in vertical and parallel lines, and if you look at them closely, you will realize that those shapes are mostly placed around the body’s moving parts such as wrists, shoulders, knees and feet. And in so doing, they restrict the actions of the characters. This seems to be his visualization of the existence of the territory around the characters; it signifies whole social systems and institutions such as stereotypes, prejudices, other people’s gazes, etc. In other words, these characters signify modern people that are controlled by other people and social forces. This is a visual depiction of the circumstances that show how stereotypes and the prejudice of other peoples’ gazes restrict subjective action.

The people who encounter Kim’s work for the first time often make the mistake of assuming that his work is similar in form with the works of twentieth century cubists. Kim’s figures receive their form through the organic combination of divided fragments; yet, this is not done by employing multiple perspectives towards a subject. Rather, it is an absolutely flat representation of characters that have been observed from a fixed perspective, and then re-produced through the combination of simplified geometric shapes.

Furthermore, the formal basis of his work is the tangram, a traditional Chinese puzzle game. With seven different shaped pieces consisting of five equilateral triangles of different size, a square and a parallelogram, it is a game for creating new and unique shapes and forms. Over 10,000 shapes can be made with the seven tangram pieces within a square frame. However, even though hundreds and thousands of shapes can be created, those seven basic fragments are still restricted within the ten by ten centimeter square frame. (Originally the tangram consisted of seven pieces, but pieces can be added more in order to create more variety, still, the forms do not escape the basic frame.) When applying this to the work of Kim Hyungjin, the thousands of modern people’s images captured by the artist’s gaze are depicted as characters in various actions, but their reality is not yet free from the frames of conventions and ideas: indeed they are restrained beings. In this context, the frame of the canvas acts as the square and the figures are tightly constrained by its four corners.

The characters that Kim represents display familiar movements that look like something we have encountered somewhere in our ordinary surroundings. Some are drinking coffee, smoking, typing or vacantly waiting. By simplifying these kinds of familiar human actions that we commonly see in our everyday lives, Kim seems to be achieving sympathy from viewers. In addition to this, one can find some unique characteristics from his characters: the gazes of all the figures are toward the right side, and the bodies of the figures are also depicted in profile. By doing so, Kim seems to be trying to satire the monotony of modern experience.

Kim intentionally adjusts the direction of the gaze of his subjects toward one direction. In addition, the bodies of the characters are represented in a similar manner to that of the tomb paintings of ancient Egypt: faces, legs and feet are represented in profile in order to emphasize the traits of each body part. Artists in that era drew their figures according to certain rules of form; therefore, their figures were depicted in stiff postures. In fact, their purpose was to express flawlessness and perfection based on their belief in the afterlife; their purpose was not in expression of the beauty of human figures. For this, they emphasized rules of geometry because they believed that it would express the substance of the human figures. Considering this, one might take pleasure in the peculiar interpretation of contemporary human being that Kim attempts in his geometric representation of the human body.

Actually the artist started to concentrate on the subject of modern people since his Windy City series where, while at college, he drew dreary cityscapes of Chicago. What the artist encountered in the center of that city established by human civilization was empty windy streets void of human trace. There a circumstance was created where the main component of the civilization is overturned by civilization itself. Humans become anonymous beings lacking ontological purpose. In this way, the artist became interested in the idea of the complete isolation of the modern people in civilization’s city. This continues in Kim’s Pedestrian Series that portrays anonymous people passing by in the street. In this series, the figures are not illustrated as fixed images with clear outlines, but are rather portrayed as vague shadowy figures. It seems to be quite important that he chose anonymous subjects with particular characters.

The movement of the characters who speedily passed the artist’s eyes is expressed in rough brush strokes, with lingering images emerging in their midst. This enables the viewers to have a same visual experience with the artist who stays outside the canvas, and with this, they can mutually experience the invisible distance between the artist and his subject. Such a psychological distance develops into more concrete forms: as if the city people are being examined with a square shaped conceptual lens, the body of the characters is captured in the frame of a square and their movements are gradually restricted in the fragmentary geometric images. In this way, the characters are situated in increasingly isolated circumstances, and there the sense of alienation is fortified. As a result, the alienated people of the city continue to occupy Kim’s work.

Finally one can find another trait of his paintings in the materials that he uses. Maybe it became difficult to achieve an adequate persuasive power when it comes to a discussion of the manner of graphic expression in present times; however, in his work one should mention the importance of his materials to his paintings. First of all, the artist puts rice paper onto a canvas, and then copies his characters from the original sketches with charcoal. After that, he colors the surfaces. Then, he uses instant coffees. Controlling the density of the coffee grounds, he controls color saturation. In addition to this, he uses powdered charcoal for making outlines, and this effect comes out in a form of soft and varied tones of the Chinese ink outlines. Having studied Oriental paintings in his undergrad, his technique of monotonous shading seems quite mature. The reason why the artist uses coffee as his coloring material has to do with the fact that his characters are all contemporary figures: coffee, one of Kim’s main materials, is a drink that people in present times cannot live without, instant coffee in particular is a symbol of contemporary life. The surface evenly painted with coffee accomplishes the look of vintage books. In contrast, Kim applies colorful primary colors to the surface of his characters. Yet with lowered colour saturation, Kim creates a subtle harmony with the brownish, monotonous representations of his characters.

Kim chooses colours according to the atmosphere of each character’s movement. This monotonous color use signifies the spectacle of the city while at the same time becoming a formative element of the work that intrigues the viewers’ attention to the two dimensional characters on the canvas. The last process in producing the work, the artist coats the surface of the canvas with an opaque medium achieving a softer tone and a sense of coordination. With this coating effect, the characters even appear as if they are frozen in time. We don’t know when it began, but the modern people started to appear as controlled figures forcibly removed from their own subjectivity, their thoughts, voices and acts systematically restricted by social conventions and the piercing gaze of others.

Ultimately, his work captures the viewer attention because of the fact that these are indeed sad portraits of the life of the modern people in a city who are alienated from the substance of being human. It has been a long time since we have lost our autonomy, the substance of our humanity: caught in the current of the times, we have lost our individual independence. Kim Hyungjin’s work signifies that this might be captured as a custom of an era and be represented as our gloomy portrait to the next generation’s eyes, and with this, he calls our attention to the circumstances that we are facing now.

 

– 2009 –

Chung Hyoim (curator of Seoulmuseumofart)

Kim Hyungjin has been interested in the social atmosphere that criticizes both people with penetrating standards and the self-isolation of members of society. The characters in his works are depicted as loners who are concentrating on the repetitive everyday activities of modern people: they are sitting, driving, drinking coffee or typing in square frames. In the empty spaces of the canvas, these characters are patterned, and their individual characters and circumstances are eliminated. In this way, a kind of irony is created where the activities of the characters dominate the subjects of the activities themselves.

Traces of everyday life

Kim’s paintings are represented through scrupulous and sensitive processes. The background is painted in acrylic and the central images are painted with charcoal powder ground as soft as coffee powder on rice paper and glued onto the canvas.
The painting’s shades are deepened through the application of numerous layers of paint. Such a painting process makes the paper become more securely fixed to the canvas since it absorbs the pigments. When the pigments and water are mixed and painted on the paper, the granules of glue used between the paper and the canvas are spread softly scattering the particles. The translucency produced by the layer of pigment on the paper emphasizes solid subsistence and lyrical aesthetics. The application of rice paper and the controlled shading process are probably related to Kim’s former educational background in oriental painting. Yet this cannot be read as an ‘oriental’ approach but rather a reflection of the mixture of his everyday life: coffee as a common consumer product and rice paper as a familiar material. The combination of these heterogeneous materials creates a unique effect that accomplishes a strong persuasive power.

A condensed solidity

Such a geometrical structuralization and application of limited colors have been a hallmark of Kim Hyungjin’s work, and a visual element that drives us to look at his work’s connection to Cubism. However, interestingly enough, beyond its surface-level similarity to cubism, his paintings rather suggest special characteristics that are quite different from cubism in its intrinsic value. While cubism used a geometric shapes in order to realize transfer the three dimensional into the two dimensional, Kim uses the shapes to condense solidity and transform it into the two dimensional. The cubism that tried to realize an expanded space-time reality of objects in two dimensional spaces by associating with basic particles that constructs the foundation of figures and Kim who concentrates on the two dimensional are laid on opposite sides. He doesn’t construct the reality by reorganization of geometric shapes, but deconstructs the actuality within his application of lines and transforms the three dimensional into the two dimensional. As a result, his works have a peculiar plainness as if they were created by putting together puzzle pieces. To him, the fragmented surfaces are not an element that gives conceptual volume to a two-dimensional space, but rather fragments of condensed actuality.

Space and time of an instant moment

Such constructed images are organized in the background where the illusion of realization is eliminated. And here in many perspectives, the characters and background contrast. The monochrome background painted in opaque acrylics don’t even have any traces of brush strokes, and the characters appear separated from the background as if they were cut out from different spaces. These two make a clear contrast against each other and create a kind of tension in the picture. Though it is now captured in suspended time and space, such an instability of an aggregate seem unstable as if they are about to scatter again as the pixels of a cyber space. When the represented figure signifies a trace of condensed solidity, the background becomes a phase of a captured time and empty space. Modern people trying to take a place in the gaze of the others are transformed into a group of fragments and frozen into a moment.

People living in metropolises pass by hundreds and thousands people everyday from the moment they wake up until they go to bed. With the increasing speed of life, individuals get lost in the surface of life, and they indifferently pass by each other everyday. The indifference toward unknown individuals, furthermore the familiarity of such indifference are a typical cliché which describes the sensitivity of a big city. Kim Hyungjin deconstructs reality and reconstructs it and in this way, he represents the true, hidden character of modern people.

– 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