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태 규(예술 철학)

이 글은 김형진의 작가노트를 대신하는 기술임을 밝혀둔다. 왜냐하면 글 내용의 대부분은 그와 잠깐 나눈 대화 속에서 간취한 심중소회(心中所懷)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진의 작업이 2009년부터 줄곧 보여준 칠교(七巧)판을 연상시키는 정방형의 화면위에 다양한 형태의 블록을 조합하고 때로는 해체하며 조직된, 독특한 화면 형식의 이면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우리는 그가 펼쳐낸 화면의 심연으로부터 그의 방황하는 삶의 문법을, 아니면 지극히 감성적이고 주관적일 수 있는 철학적 논리를 담아내려는 고민과 의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업을 ‘존재에 관한 서사’들이 그물망처럼 직조된 시각언어의 체계로 이해한다. 사실 이 시대의 ‘존재’에 관한 물음은 더 이상 관념이나 형이상학적 논의 대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오늘날의 철학에서 ‘존재’는 실재의 문제이고 일상적 삶이고, 늘 마주칠 수밖에 없는 세계에 대한 이해의 기점이기도 하다. 김형진의 그림을 마주하면 다양하게 배치된 퍼즐들의 혼돈 속에서 우리의 흐트러져버린 시선을 응집시키는 형상을 찾아낼 수 있다. 그 일련의 형상들은 우리의 주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누구이거나 또 다른 누구일 것이다. 그가 배치하는 인물 형상들의 심연에는 그 자신으로 환기된 존재이거나, 아니면 익명적 존재들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이 투사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존재’에 관한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생물학적 근거들에 의존해서 그의 그림을 이해해보자.

사람의 시각은 주변 세계의 어떤 곳에서든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려는 심리적 경향성이 있다고 한다.(김우창 [풍경과 마음]) 이러한 심리는 우선 생소한 세계 속에서 나와 유사한 존재 대상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이기도 하고, 꼭 내가 아니더라도 나와 유사한, 아니면 나에게 익숙한 형상을 발견하려는 심리적 본능일 것이다. 주변 색에 따라 보호색으로 위장하는 카멜레온의 위장 전략이나 대나무 가지와 유사한 몸의 구조를 가진 대벌레 등 수 많은 생명체가 주변과 닮은꼴로 유전된 것은 생존 본능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자연 사물에서 사람의 형상이나 익숙한 동물의 형상을 찾아내어 이름 붙이는 습관이나 생사의 문제를 자연 풍수와 관계지우는 동아시아인들의 삶의 방식도 생존 본능과 유사한 심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심리 본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문제는 아마도 나와 동일한 형상을 발견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꾀하려는 일종의 생존 전략인 것 같다. 원시 제례의식에서 시작된 여러 예술 장르의 기원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진 자연 현상과의 동일시[조화]로부터 불안 심리를 극복하려는 생존 본능과 결부되어 있다. 이것은 예술의 동력은 바로 자연 인식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더 나아가 이렇게 축적된 문화 정신의 근거에는 생명체의 생물학적 본능이 전제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의 외형이 거의 좌우대칭 아니면 방사대칭 구조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의 신체구조나 다양한 동물군의 형상을 비롯해서, 방사선으로 가지를 벌리고 자라는 나무와 여타 식물들의 외형은 위에서 보면 방사구조를 이루고 옆에서 보면 거의 모두가 대칭 구조를 이룬다. 그런 생태 구조 속에는 중력에 대항하는 힘의 원리와 중력을 거스르지 않는 순응, 내지는 적응의 자연적 유전 비밀이 숨겨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비밀스런 역설의 원리 속에는 균형의 법칙이 숨겨져 있다. 마치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이 적절한 균형의 법칙을 유지하면서 세계의 조화를 이룬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유가적 삶에서는 ‘중용’을 필수 규범처럼 따랐으며, 장자도 ‘도추(道樞: 도의 지도리)’에 비유해서 도를 삶의 중심에, 나아가 세계의 중심에 놓았던 것이 아닐까?

균형이 마치 생존의 원리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데에는, 대칭 구조의 익숙함이 어떤 심리적 근거를 가지는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그래야만 생명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논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심리는 생물학적 ‘존재’의 유전적 성질에 원인을 두고 있으며, 분명한 것은 생명체의 대칭 구조는 근본적으로 생명 보존의 의지가 잠재하는 전략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술 작품에서 균형을 미적 요소로 중시하는 맥락도 이러한 ‘존재’의 본능적 경향성으로 추측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김형진이 조직해내는 작업 형식에도 이런 생물학적 존재 법칙이 장착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가 화면에 배치하고 있는 부등변삼각형의 나무 조각들, 그리고 부등변삼각형의 내각을 잘라내었지만 세 변의 선을 연장하면 여전히 삼각형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나무 조각 형상들은 때로는 파열되고 때로는 응축되는 긴장의 패턴을 반복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그의 패턴은 마치 모든 정방형의 화면이 만들어낸 시각적 균형의 완전성에 저항하는 소극적 자유를 즐기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의식화된 형식 구조인 듯 보이면서도, 때로는 중력을 거스르는 무작위적 나열인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화면은 힘의 균형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임은 분명하다. 그것은 아마도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형상이 감상자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김형진은 반복되는 그 파열과 응축의 행위를 통해 화면에서 나, 아니면 익명적 존재의 형상을 조직하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한다.

나는 그가 우리에게 제시하려는 어떤 의미는 바로 존재의 존재성, 아니면 존재 일상에 대한 그의 관심이며, 그것은 자연을 포함하는 삶의 일상으로부터 체험되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창작 방식은 대상이 전해주는 시각 체험을 주관적 서사로 환기시켜 온 동아시아 예술 전통과 닮아 있으며, 자연친화적 삶을 살아온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해진 습관이다. 그의 작업에서는 존재론적 사유를 담아내기 위한 몇 가지 준칙과 같은 것들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시간성’을 드러내는 특별한 형식과, 그 형식은 유한한 존재의 불완전성으로 투사된다는 것이다. 그가 삼각형의 내면에 나무의 나이테로 그려 넣은 표현 형식은 일종의 시간이 축적한 삶의 궤적을 상징하는 것이며, 그 시간 속에는 익명적 존재의 삶이 녹아들었다. 정지된 듯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흩어진 조각들은 불안한 심리의 투영일 것이다. 이러한 창작 방식은 마치 시간성의 문제를 존재 탐구의 축으로 이해한 하이데거의 사유 방식을 연상시키게 한다. 그가 의도하는 이러한 작업 태도는 그가 작업을 시작하면서? 아니면 작업 과정이나 끝내고 붙여졌을 작품의 명제들에서도 유추된다. praying, holding, gazing, pouring, working, nailing, writing 등등, 지속해서 붙여진 현재 진행형 접미사 –ing는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아마도 유한한 존재 저편에서 흐르는 분절시킬 수 없는 시간의 지속을 간접적으로 밝히려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지속되는 시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유연한 시선으로 어떤 대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언젠가 찍어두었을 카메라 속의 영상을 응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도를 하거나 햄버거를 먹거나 커피를 따르기도 하고, 모바일에 심취하기도 하고, 우아한 몸짓으로 춤을 추기도 한다. 이것은 누구나의 일상이면서 그만의 기호(嗜好)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반면에 그의 그림에는 우리의 삶은 원래 그렇다는 듯이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과 힘의 균형적 구조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일종에 인물의 심리나 감정 변화를 시각 체계로 구성해내려는 시도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작업 의도는 ‘불완전한 형상, 아니면 분절된 형상(A partial shape)’ 시리즈의 작업 과정에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리즈 작업들은 다른 작업들과 비교해 추상적 성격에 기울고 있다는 맥락에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김형진의 작업 방향을 예측하게 한다. 작품의 명제처럼 전체를 분절시키고, 분절된 부분은 불완전한 형상으로 남겨져 있다. 이 심연의 과정에서 존재는 불완전한 실체로 남겨진 것은 아닐까? 이 작업은 마치 쉘 실버스타인의 그림동화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에서 이가 빠져 버린 동그라미가 자신의 한쪽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보여주는 것처럼, 불완전한 존재이면서도 완전함을 꿈꾸는 끝나지 않는 욕망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사람들의 삶은 원래 그렇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김형진의 그림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앞으로의 가능성에 주목해 본다. 존재에 대한 고민을 시각체계로 풀어내면서, 그의 예술 사유는 더욱 깊어질 것이며, 그 속에 서 지금보다 더 자유로움을 만끽하기를 기대한다. 그림을 감상하고 글로 적는 일은 다른 언어로 쓰인 책을 번역하고 주석을 붙이는 일과 같다. 나는 ‘번역은 반역이다’라고 말한 어느 학자의 고민처럼, 이 글이 반역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 2014 –

심소미

김형진의 회화는 선과 면이 화면을 분할하며 인물의 형상을 생성해내는 특징을 가진다. 다양한 형상의 도형들이 서로 군집된 인물은, 주로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개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하철에 앉아 신문을 보거나, 카페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고, 무심코 화장을 고치는 모습 등 인물들을 둘러보다보면 공통적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홀로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으나 인물이 주는 정감은 고독하고 적막하다. 더욱이 이들의 시선은 화면 너머 혹은 화면 속 어딘가로 향하며, 개인에게 내제된 고립된 심상을 더한다.

누구도 시선을 마주칠 수 없이 프레임 속 나만의 공간에 놓인 인물의 모습은 군중 속에서 개별화된 현대인의 인상과도 닮아있다. 점점 더 스펙터클해지는 현대 사회 속에서 개인은 거대화된 공간 속에 있으면서도 각기 단절과 소외를 경험하며, 이를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군중 속 타자들 사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개인의 소외감은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 내성화된 보편적 소외의 순간들이다.

작가의 작업에서 개인의 존재, 세계 내 존재로서의 실존감은 스토리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회화의 조형적 측면을 통해 전개되어 나간다. 무수한 조각들이 인물의 형상을 이루며 화면을 분할해나가는 조형적 특징은 그의 작업에서 특히나 두드러지는 면이다. 기하학적인 구성으로 인체를 분절하여 다루는 방식은 미술사적 맥락에서 익숙한 어떠한 스타일 혹은 경향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소재로 취하는 일상의 사람들처럼 현실의 삶, 즉 실존적 상황을 바탕으로 해 본다면 형식적인 특징이 은유하며 심화시키고 있는 작가만의 방향을 짚어볼 수 있다.

형식이 은유하는 바를 살펴보기 전에, 이에 기반 하는 요소로서 앞서 살펴본 작업의 소재와 더불어 재료를 살펴보겠다. 브라운 톤의 색감은 조각난 도형 각각을 개별적으로 드러내면서 통일감 있게 화면을 아우른다. 종이의 질감을 머금듯 스며든 본 재료는, 독특하게도 인스턴트커피이다. 목탄과 커피의 농담을 조절하여 얻어진 색감은 은은하고 섬세한 인상부터 거칠고 깊은 인상까지 다양하게 구사된다. 색감이 주는 감성적 묘미와 더불어 흥미로운 점은, 인스턴트커피가 내포하는 현대적 정감이다.

바쁜 일상의 현대인에게 인스턴트커피는 나라는 존재를 각성시킴과 동시에 내면의 여유를 선사하는 모순적 속성을 지닌다. 개인의 불안하고도 강박적 심리를 자극하면서도 다른 한편 이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의 화면에서 인스턴트커피가 주는 색감은 인물이 내포한 심리에 접근하게 하며, 화면을 향한 시선을 내면의 풍경으로 이끈다.

현대인이 겪는 심리적 정황은 작가가 취하는 소재, 재료와 더불어 조형적 어법을 통하여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하학적 도형을 근간으로 하여 인물의 형상을 분할하는 방식은 첫 개인전 ‘Illogical Tangram'(2009)에서 본격화된 것으로,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해오던 ‘칠교놀이(tangram)’의 구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7개의 조각이 한 세트인 본 놀이는, 본 조각만을 사용해서 현재 1600여개의 도안을 구성할 수 있는 다양성을 지니며, 그 이상의 새로운 도안도 가능하다.

작가는 칠교놀이가 가지는 형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규약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형태로 변주가 가능한 속성에 주목하여, 현대인에게 주어진 여러 경계들을 형식화하고 이를 재구성할 계기를 자신의 화폭에 마련하게 된다. 이러한 형식적 측면은 한 개인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자기 각성에 대한 반영물이라 할 수 있다. 개인에게 갑옷처럼 입혀진 고정관념과 규제들은 그의 화폭에서 여러 조각들로 분화되어 형상을 규제하는 동시에 분열시키는 요소가 된 것이다.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선과 면으로 구분된 수많은 프레임과 모서리는 이 세계의 편견이나 고정관념들, 그리고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타자화된 시선 및 규제범위와 관계된다. 이러한 구속력으로부터 고정된 형태를 해체하여 무수한 도형들이 조합되듯 탄생한 인물은 현대인의 불안정한 심리를 반영하며, 내면에 감추어진 실존적 고뇌를 드러낸다.

기존 맥락의 연장선에 있는 두 번째 개인전 ‘Invisible Anxiety’는 첫 개인전에서 시도된 조형적 어법으로부터 실존의 본질에 중점을 두어 이를 심화시키고 있다. 작가는 본 전시의 주제목인 ‘보이지 않는 불안’과 더불어 ‘역설적 기대감’을 부재로 달고 있는데, 이는 한계 상황 속의 인간이라는 실존적 상황을 보다 심층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다.

작가는 개인의 실존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갈구하는 이중적 상태를 ‘역설적 기대감’이라 부가적으로 설명하며, 이러한 인간의 모순된 상황을 일종의 ‘공포’라 칭하고 있다.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에 복종하면서도 기대를 품고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에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공포심이 존재한다.

실존에 대한 모순적 상황은 근작의 형식적 변화에서도 감지된다. 선과 선이 면을 생성하며 인물을 분할하던 전작에 비해, 근작은 명확한 형태로 구분된 도형들이 인물을 수많은 조각들로 분할시키고 있다. 파편들의 거대한 덩어리로 재구축된 인물은 마치 퍼즐처럼 흩어져나가 언제라도 해체가 가능한 모습이다. 분열과 생성 사이에서 형성된 인물의 심상은 불안함과 기대감을 동시에 함의하며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본 전시에서는 이러한 실존적 상황에 대한 배경으로 작용하는 타자 및 사회적 관계에 대한 내러티브도 시도되고 있다. 전시 작품 중 유일하게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Giant Deal’은 이러한 변화점을 시사해 준다. 두 명의 비즈니스맨이 대척하고 있는 구도의 본 작품은, 서로 거래를 위해 악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리전을 긴장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두 인물이 악수하는 결정적 순간을 파편화하여 서로를 관계시키는 것으로, 타자와의 관계망 속에서 생성되는 공존과 대립 그 모순된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두 인물로부터 구축된 파편들은 관계 사이에 작용하는 구속력과 같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시각화하고 있다. 화면에 건축적 모서리를 둠으로써 드러나는 심리적 공간은, 본 전시의 연극적인 연출 방식을 통해 극화(Dramatization)된다.

캔버스의 프레임에 맞춰 정확한 규격으로 작품을 비추고 있는 조명은, 화면 속 인물을 실제의 공간으로부터 고립시키며 개인이 처한 실존적 괴리감을 극적으로 연출해낸다. 규약된 인공의 빛을 통해 과도하게 조명된 인물은 어둠 속 침묵을 깨고 갈구하듯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이다. 어둠이 감싼 철저한 고독과 불안하게 요동치는 파편들 그리고 발광하며 드러난 인물은 실존에 대한 극단의 공포를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 혹자는 부조리극과 같이 인간성의 허무에서 오는 공포를 직면하고, 이로부터 화면 속 조각난 인물들처럼 반향 할 것이다.

– 2011 –

Lim, Tae-gyu (Philosophy of Art)

Before starting this writing, I would like to clarify that it is a statement replacing Kim, Hyung-jin’s artist note. This is because most of the content is from the essential thoughts of the artist that I found from the brief conversation between me and the artist.

Let me take your attention to the meaning of the artist’s composition system on the square canvas that variously combines and separates the blocks which remind me of the traditional seven-piece board game. We should be able to find the artist’s efforts and will to contain her wondering life or the philosophical logics that could seem too emotional or subjective. That is the reason why I understand the artist’s work as a visual language system like a net that talks about ‘narrations about beings’. In fact, it is clear that questions about ‘beings’ is no longer values as a notion or a metaphysical issue to be discussed. In today’s philosophy, ‘being’ is a realistic problem, is an everyday life, and the understanding point for the world that people face all the time. When looking at Kim, Hyung-jin’s artwork, a shape can be found that catches people’s scattered attentions. Some of the certain shapes from the artist’s canvas would be the ones who are around in our everyday lives or someone else. The human shaped compositions of the artist seem to be the artist, or they seem to contain the questions about the meaning of life of an unknown. Therefore, I would like to suggest adapting biological foundations to understand the artwork though it could be a bit abstract.

According to ‘Landscape and Heart’ by Kim, Woo-chang, people tend to find human face figures at wherever, psychologically speaking. Such tendency is to find someone in the world who is similar to oneself, or even if it is not exactly like the one, it is to find what is similar to the one or to find the figures that are familiar to the one. The behaviors of chameleons which color up themselves similar to the colors around them to protect them and of a number of creatures such as stick insects which get born in similar figures to their surroundings are related to the instinct of survival. Also, naming the natures according to the figures of humans or to the familiar animals, and the life style of East-Asians who connect their life issues with the nature, can be examples of the instincts for survivals.

If so, where did this psychological instinct come from? The issue here is to find psychological stability by finding figures that are similar to one; it is a type of survival strategy. The various fine art genres started from the ancient religious services which were to take the fearful nature activities as the same level as the people; it is a survival instinct. It brings out the important fact that the motivation of fine art started from recognizing the nature.

Furthermore, I could conclude that the foundation of such culture is based on the biological instincts.

What is the reason for all the living creatures on earth are mostly left-right symmetry or diagonal symmetry? Not only anatomy of humans and various animals, trees and plants also grow diagonally show the diagonal symmetry shape from the top and left-right symmetry from the side views. Such structures seem to contain the power against the gravity and as well as the flow that goes along with the gravity, or they seem to secretly have the genes of adjustments. Plus, in this secret irony, the law of balance exists. It is like human beings on earth who live lives of balancing with the world. Would not it be the reason why the Confucianism takes ‘balance’ as its core law, and Zhuangzi took the ‘absolute truth’ which places tao at the center of lives and of the world?

Though the familiarity of symmetry is not clear if it has any psychological proofs, but it seems that there is a belief of taking balance as the principle of living. However, discussing the cause and result is not very important here. What is important is that the psychological interpretations bases on the gene characters of biological ‘beings’, and what is clear is that the symmetry structure of lives has very close connections to the potential strategy of life-saving will.

This also allows the assumption in fine art that takes balance as an important element might have started from the ‘being’ instinct.

I can find that such biological logic is also contained in Kim, Hyung-jin’s artwork compositions. The inequilateral triangles’ wood pieces on the canvas, and though the inner angles of them are cut sometiems, when the three lines are elongated, the balance by making triangles is still there, and such breaks and combinations are repetitively expressed. The artist’s pattern sometimes seems to be enjoying its freedom by breaking the perfectness of the square canvas. That might be the reason why I sometimes find that the compositions seem to be under specific layouts, but sometimes they seem to be randomly displayed. However, it is clear that the artist’s canvas has the willing expression of keeping the balance of power. This probably comes from the shapes created by the pieces that catch audience’s attentions. Kim, Hyung-jin is either combining or scattering the figure of the unknown on the canvas by the repetitive breaks and combinations of the pieces.

What the artist is trying to communicate is either the presence of the existence or the artist’s interest in everyday life, and they are from the artist’s life experiences that include the nature. Such creative process is similar to the East Asian art tradition that transforms visual experiences into narrations; it is very familiar to us who have lived lives that are closely attached to the nature. There are some types of rules in the artwork for containing ontological thoughts. First, there is the special rule for discussions about ‘time’ which reflects the imperfectness of the finite beings. The annual rings that the artist drew in the triangles symbolize the steps of a life, and contain the unknowns’ lives. The scattered pieces that seem to be still but continually producing tension reflect the insecurity. Such creative process reminds of the Heidegger’s reasoning that considers time issue as the axis for exploring existences. Such attitude of creative process can be found also from the key words that the artist chose before, or in the middle or, after the process. ‘Praying’, ‘holding’, ‘gazing’, ‘pouring’, ‘working’, ‘nailing’, ‘writing’, etc., the continuously attached ‘ing’ should not be a coincidence. Probably, did not the artist try to show symbolically the continuously flowing time –not the segmented time– behind the finite existences?

The human characters shown in the concept of the continuing time stare at a target with softness, and stare at the movie in the camera filmed sometime in the past. Also, they pray, or eat a hamburger, or pour coffee, or concentrate on mobile, or dance elegantly. These can be everyday life activities of anyone, as well as reflecting the artist’s preference. On the other hand, there is the invisible tension and the structures of power balancing in the artwork as if telling how human lives are actually like. It seems to be visualizing human psychology or emotional changes.

But more than anything, I think that the artist’s goal is in the creative process of creating the ‘imperfect figures, or segmented figures’. As these artworks are more abstract than the other, I carefully assume how the artist’s work will be in the future. Like the keywords of the artwork, the whole canvas is segmented, and the partial shapes of the segmentations are left as imperfect figures. During this sincere process, has not the being been left as an imperfect being? This creative process is similar to the Shel Silverstein’s ‘The Missing Piece Meets the Big O’, the story of an imperfect circle with a missing piece that goes for a journey to find the piece; the process shows the endless desire of being perfect despite of the imperfect actual being. The artwork says that it is how everyone is like.

When viewing and understanding Kim, Hyung-jin’s artwork, I focus to the future potential of the artist more than anything. As the artist visualize the thoughts about existences, the artistic explorations will flourish more, and I expect that the artist would fully enjoy the freedom even more than now. Writing about an artwork after viewing an artwork is like translating and adding captions of a book. Like the quote of a scholar, ‘translation is treason’, I hope that this writing would not be treason.

– 2014 –

Somi Sim

Kim Hyoung-jin’s paintings are characterized by geometrically divided canvas screens of human figures. The figures are comprised of and conglomerations of various geometric shapes yet still depict the everyday individuals in random postures: a person reading a newspaper on the train, sipping coffee in a café or applying make-up. They all have different poses yet resonate a similar ambience; they are all deeply immersed in something, yet they emit a somewhat solitary sense of loneliness.

In his works, people gaze within or beyond the canvas, with a tinge of isolation immanent in every individual. The characters do not interchange gazes and are only indulging in their own world, similar to the contemporary flaneur who is isolated even while situated with others. Confronted with a surge of spectacles in the contemporary era, one is isolated as an individual and regards and accepts this as a part of the contemporary life. The withdrawn feeling of an individual, even when placed amongst people or with others, is now so common, and many regard this as universal and normal.

Kim’s works focus on painting’s figurative aspects rather than focusing on narrative perspective. Kim’s emphasis on figurative approach protrudes actual existence and presence of an individual placed in the world. Those numerously different, geometrically devised shapes comprise a human figure yet still divide the screen canvas. Geometrical composition and fragmented human figures are now very familiar from the art history context, and we could easily regard and define his works with the now very familiar –ism.

However, Kim’s subject matter is unique; people leading their mundane lives, i.e. placed in existential situations. Kim adopted this figurative method as a metaphor for further delving into his own unique theme which will be discussed below.

Before going into the formal aspects of his works, we will have to point out his use of uncommon material. His major motif is brown-ish geometrical shapes; they are all individually unique and share a similar ambience, giving a holistic feeling to the canvas. However, to our surprise, the material he uses is instant coffee, i.e. paper is permeated with coffee. He meticulously controls the density of charcoal and coffee, obtaining delicate and subdued colors and can even portray melancholy and rough textures. Along with the emotional subtleties of colors, interestingly, the material he uses, instant coffee itself, oscillates the feeling of contemporariness.

To the average person today, instant coffee is reminiscent of busy urban life, yet coffee also endows some sort of relaxing moment. Likewise, coffee has this dubious character; arousing inner instability and connoting an obsessive mentality. Yet it embraces and consoles such obsession or addiction. From Kim’s screen, the color tones of coffee allow us to penetrate the inner landscape of the figure portrayed, and the gaze toward the canvas is transformed into a gaze onto ourselves, the viewers.

The emotional landscapes of modern people are more dramatized with his figurative lexicon along with the material and subject matter. Kim’s first solo exhibition, ‘Illogical Tangram’ (2009), first clearly declared the geometrical figurative method that he adopted. This motif is based on China’s traditional Tangram play method in which 7 different fragments make up one set, yet it is possible to come up with 1600 or more different and new designs.

Despite of the formal restrictions on Tangrams, Kim traverses various formalities and seeks variations in this method with his works, cleverly playing with the artistic potential of this technique. Kim formalized all those borders and equivocal restrictions given to contemporary people then recomposed them. Such a formal aspect allows the viewer to ponder on the artist’s self-reflection as the artist himself is living in this contemporary world as an individual. Prejudices and restrictions, regardless of one’s desire, clothe the individual, and they are fragmented to small pieces then become the controlling, dominating and dividing factors of forms.

Those overpowering social frames are divided and expressed as lines and facets, and they are relevant to worldly and earthly prejudices, bigotries and prying eyes that dominate individuals and set down boundaries. Kim deconstructs and dismantles such fixed overpowering forms that are acting as shackles for the individual. Kim creates human figures by combining such deconstructed geometrical shapes, and they reflect insecure inner mentality, exposing normally hidden existential agonies.

Kim’s second exhibition, “Invisible Anxiety,” further accentuated the existential substance of human beings as shown in his first solo exhibition while rooted in Kim’s figurative method. The subtitle for this exhibition was ‘Invisible Anxieties’ and ‘Paradoxical Expectations’ with an aim to further scrutinize existential situations of human beings as placed or driven to the extreme or restrictions.

The term ‘Paradoxical Expectations’ was created to refer to the two-fold status of humans who long for communication with others alongside the private fear of such encounters. Kim uses the word, paradox to connote this fear for such longing. Human beings lead insecure lives overshadowed by obscure anxieties, yet still maintain high expectations for the hope of tomorrow, even feeling helpless and powerless with the fear for the absurd reality.

Such contradictory situations are easily spotted in Kim’s recent works, with changed formalities. Compared to his previous works that divide human figures with lines, recent works show geometrical shapes that segment yet compose human figures. The human figure is made up of numerous fragments, like some puzzles, ready to be deconstructed. The inner sentiments and landscapes are created upon/in-between those fissions and re-creations, alluding to insecurities and expectations of an individual while still maintaining tension.

This exhibition shows Kim’s attempts to unfold his own comments on others and social relationships whilst embracing previous mentioned existential issues. For example, only one of his works, , features two people, unlike other works that show one solitary person. We can see two business men confronting each other. We can sense the psychological tensions of these two profit-seeking business-men who are about to shake hands after a deal. The hand-shaking moment is fragmented yet reveals the upcoming relationship of these two. This discloses the paradoxical character of relationships which claims harmonical co-existence yet still retains the aggressive confrontation of individuals when facing others.

The fragments produced from the relationship of these two emit and embody the influences of these indivisible tensions and binding forces of two people. The psychological spaces unveiled with the cleverly designed architectural corner on the canvas further theatrically dramatize the whole scene.

The lighting projects a meticulously calculated canvas frame. This lighting effect thoroughly isolates the human figure on the canvas from the real world, theatrically directing one’s feeling of existential dilemma. The carefully designed artificial and overtly excessive lighting exposes the character’s dark side and desire to meditate in silence. The absolute solitude and insecure mentality give rise to oscillations of to those fragments, and reveal one’s psychological fitness, reminding us of the extreme fear for human existence. From this, one may obtain courage to face one’s fears from the vanity of life, like some absurd plays, and many identify themselves as those fragmented, torn individuals.

–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