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llogical Tangram

The Illogical Tangram

정효임(서울 시립 미술관 큐레이터)

김형진은 날 선 잣대로 타인을 재단하는 사회 분위기와 구성원들 스스로의 자기소외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의 작업에서 인간들은 정방형 틀 안에 홀로 앉아 운전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타이핑을 하는 등 반복되는 현대인의 일상에 몰입하고 있다. 텅 빈 공간 속에서 인물들은 패턴화되고 상황과 개체의 특질은 지워진 채, 행위 자체가 결국 행위의 주체를 집어 삼키는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일상의 흔적

화면은 세심하고 감성적인 단계를 거쳐 구현된다. 바탕은 아크릴 물감으로 칠해지고, 중심 이미지는 캔버스에 접착된 순지 위에 커피분말과 곱게 갈아진 목탄 가루를 통해 그려진다. 몇 겹으로 칠했느냐에 따라 음영이 조절되고 겹이 더해질수록 종이는 안료를 머금으며 안정적으로 접착된다. 안료가 물과 섞여 발라지면 종이를 캔버스에 붙일 때 사용한 접착제 알갱이들이 부드럽게 점 점의 입자로 번진다. 종이 위에 올려진 안료의 막이 만들어낸 반투명의 성질은 견고한 존재감과 서정적 미감을 드러낸다. 한지의 사용과 농담을 조절해가는 발색 과정은 김형진의 동양화 교육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동양적’인 접근 방법이기보다는 익숙히 사용해온 한지와 흔한 소모품인 커피를 조합한 일상의 반영에 가깝다. 이질적인 요소들의 조합은 고유한 효과를 만들어내며 설득력을 갖는다.

압축되는 입체

기하학적 구조화와 제한된 색채사용 등은 김형진 작업에서 꾸준히 반복되어온 특징인 동시에 일면 입체주의와의 연결점을 짚어 보게끔 하는 시각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표면의 유사함과는 상이하게 그의 작업은 내용적으로 입체주의와는 상이하게 전개된다. 입체주의 사조가 3차원을 2차원에 옮기는 방편으로 기하학 형상을 사용했다면, 김형진은 오히려 실재를 압축시켜 평면으로 환원시키는 방편으로 기하학 형상을 이용한다. 형상의 근본을 이루는 단위체를 조합하여 대상의 실재성을 평면 위에 구현하려 했던 입체주의와 평면성에 집중하는 김형진은 서로 반대선상에 놓여있는 것이다. 작가는 도형 단위체를 조합해 평면에 입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활용 안에서 형상을 해체하고 입체를 평면으로 환원시킨다. 그 결과, 퍼즐을 이어 만든 듯한 독특한 평면성이 획득된다. 분할된 면들은 2차원에 개념적인 볼륨을 부여하는 요소가 아닌 압축된 현실의 조각이 된다.

찰나의 시공간

표피화된 이미지는 재현의 일루전이 제거된 바탕 위에 조합된다. 인물과 배경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데 붓의 움직임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불투명 아크릴로 칠해진 단색바탕과 그 위에 마치 따로 오려져 붙여진 듯 유리되어있는 인간은 상호 대치되며 긴장감을 유발한다. 화면에서는 정지된 시공간에 유예되어있으나 사이버 공간 속 픽셀 무리처럼 언제 다시 흩어져 버릴지 모르는 집합체의 불안정함이 부각된다. 그려진 인물이 압축된 입체의 흔적이라면 바탕은 무의 공간이자 포착된 시간의 한 면이다. 타자의 시선 속에서 위태로운 자리잡기를 하고 있는 현대인은 조각 군집으로 환원되어 찰나에 머문다.

아침에 눈을 떠 다시 자리에 들기까지 대도시의 인간들은 매일 수백, 수천 명의 타인을 지나친다. 점점 가속되는 삶의 템포에 맞추어 인생의 표면을 부유하는 개인들은 무심히 서로를 스친다. 익명의 개체들에 대한 무관심, 나아가 무관심에 대한 익숙함은 대도시의 정서를 묘사하는 대표적 클리셰이다. 김형진은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현실을 분해하고 재조합하며 일상에 묻혀있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들추어내 보여준다.

– 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