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벽서’ 박정수, “자꾸 뭘 그리고 싶다” Interest

 

G20 홍보 포스터에 쥐를 그린 박정수씨에게 벌금 200만원이 선고되었다. 박씨는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법원을 향해 “누구의 명예를 말하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를 만나 최근 심경을 들어보았다.

 

여기, 데뷔와 동시에 은퇴 위기에 놓인 작가가 있다. 익명성이 핵심인 그래피티(graffiti:벽과 같은 곳에 낙서를 하거나 스프레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 작업을 하던 중 경찰에 끌려가 전국에 신분을 알린 탓이다. 박정수씨(41·대학 강사)는 이처럼 거창하게 예술계에 등장했지만, 작품은 단 하나밖에 남길 수 없었다. 작품명은 일명 ‘쥐 벽서’. 지난해 10월 말 서울 시내에 붙어 있던 G20 홍보 포스터에 쥐를 그려넣었다.

이 문제작은 5월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형사 10단독 이종언 판사)으로부터 200만원이라는 ‘감정가’를 받았다. 재판부는 “헌법이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무제한적 기본권은 아니다. 공공 안내문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창작과 표현 활동의 자유에 속하더라도, 형법에서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이상 이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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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백승기
박정수씨 등 뒤로 보이는 것은 그가 요즘 손대는 공공미술의 일종인 ‘갤러리 텃밭’이다.
선고를 받은 직후 박씨는 기자들 앞에 섰다. 인원 제한으로 34석 규모 법정에 미처 입장하지 못한 기자가 있을 정도로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포토라인에 선 그의 차림은 단출했다. 검찰이 10개월 구형을 한 터라, 혹여나 바로 구치소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장을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법원이) 봐준 것 같지만 결국 유죄다. 예술적 표현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데 누구의 명예를 말하는가”라고 반문했다.

트위터에서는 “G20 쥐 그림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 수익으로 벌금을 충당하자”라는 제안이 나왔다. 박씨의 아내 황진미씨(영화 평론가)도 “5~6월 중에 ‘쥐 옷’ 입고 청사초롱 들고 모금함을 돌리거나, 티셔츠 판매하는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는 트위터 멘션을 남기며 호응했다.

재판 이틀 전인 5월11일, 서울 용산구 남산에 자리 잡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박정수씨를 만났다.


판결이 어떻게 나오리라 예상하나.

재판 결과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과정 자체가 의미 있고 즐겁다.

즐겁다니 의외다.
그래피티 과정 자체도 즐거웠고, 이후 경찰에서의 구속 위기, 검찰 조사 과정, 3차에 걸친 공판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대단한 경험이었다. 내가 한 일에 떳떳한데, 그 떳떳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공권력과 어떤 형식으로든 맞서봐서 그렇다. 또 3차 공판에서는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은 법정 드라마가 펼쳐졌다. 검사와 변호사가 다투고 판사가 개입하는 식이었다. 대개 법정은 서로 써온 내용을 쭉 읽고 끝난다던데, 논쟁이 열띠게 일어나서 굉장히 재미있었다.

검찰이 징역 10개월을 구형한 뒤 문화계에 탄원서 바람이 불었다.

영화 평론가인 아내(황진미씨)와의 인연으로 영화감독 이창동·박찬욱·봉준호 씨 등이 탄원서를 썼다. 전부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다보니, 탄원서에 예술에서 표현의 자유가 가지는 특성이 더 부각된 것 같다. 그 덕에 쥐 벽서 사건의 논쟁 양상도 달라진 듯하다.

그 전에는 논의가 어땠기에?

나는 G20 정상회의만 하면 국격이 올라갈 것 같이 홍보하는 정부의 태도를 지적하고 싶었다. 예술로써. 그런데 아무리 내 행위를 예술이라고 설명해도, 사람들은 “비겁하다” “왜 핑계 대냐” “솔직히 말해봐라, 사실 이명박 대통령을 공격하려고 한 일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노무현 대통령 묘에 분뇨 투척한 거는 어떻게 보냐”라는 등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들었다. 답답했다. 심지어 나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리도 공격하는 사람들과 비슷했다. 완전히 ‘MB 대 반MB’ 구도였다. 그런데 예술가들이 나서면서 논의 구도가 달라졌다. 유머의 정서와 힘에 대한 이야기가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됐고, 유머를 공포로 탄압하는 저열함이 부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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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씨는 G20 홍보물에 쥐 그림(맨위)을 그려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트위터에 이 ‘쥐 벽서’ 사건을 패러디한 다양한 사진이 올라왔다.

이번 일을 겪으며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다면?
잃은 것은 이데올로기고, 얻은 것은 예술이다. 이데올로기라는 게 주로 이념과 철학에 대한 탐구이다. 그런데 작년에 이 사건을 겪으면서 이념으로만 포괄할 수 없는 삶의 영역에 직접 닿게 되었다. 이념으로 포괄되지 않는 삶의 잉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예술공부를 실천해야겠다 싶다. 그래서 ‘수유+너머’ 뒤 공원에 ‘갤러리 텃밭’을 만들었다.

‘쥐 벽서’ 사건 후 또 다른 공공미술을 시작한 그는 주변에 눈을 돌렸다. 누군가 버린 청바지를 주워와 그 안에 흙을 넣고 고추를 심어 ‘부푼 남자의 꿈’이라는 작품명을 달았다. 바로 옆에는 토마토가 심어진 청바지가 있었다. ‘여자의 열매.’ 그는 지난 3월부터 동네 아이 15명과 함께 유머 가득한 텃밭을 가꾸고 있다.

그래피티 작가는 익명성이 생명이라는데, 누군지 드러났으니 이제 활동이 어렵겠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게 있다. 4대강 문제이다. 환경 단체나 불교계에서도 이제 손을 뗀 것 같다. 절망해버린 거다. 환경문제는 항상 이런 식인데, (정부가) 밀어붙이면 막판에는 다 떨어져나간다. 이념적·법적 투쟁을 해서 그런 건 아닐까. 다른 방식으로 싸웠으면 좋겠다, 예술적으로. 아직은 아이디어가 좀 관념적이지만, 4대강 수로의 콘크리트에다가 뭘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든다. 물론 그게 나일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루쉰과 카프카를 좋아하고, 요즘은 블랑쇼를 다시 읽는다며 낯선 철학 용어를 구어체처럼 말하는 박씨는 사실 인문학자이다. 서강대에서 불문학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최근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펴낸 이 연구자는 멀리는 영국의 그래피티 작가 뱅크시에서, 가까이는 서울시 조형물에 낙서를 했던 ‘해치맨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어 ‘쥐 벽서’를 그렸다. ‘이명박 정부의 무겁고 촌스러운 공기’가 자꾸 그의 예술혼을 자극한단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출처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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